주요 대기업집단 오너 전면 부상
한국형 조직문화로 굳어져···의사결정 신속
책임지지 않는 권한 비판도
【서울=뉴시스】김정남 기자 =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들이 오너 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최근 급속도로 빨라진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경영모델'로 오너 경영체제가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책임지지 않는 권한이라는 비판도 여전한 상황이다.
지난 24일 SK그룹은 정기인사를 통해 최태원(50) SK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47) SK 부회장을 신설된 그룹 부회장단을 이끄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최재원 부회장은 2004년 3월 분식회계와 소버린 사태 등으로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으며, 이후로도 조용히 경영에 참여해왔다. 사실상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른바 '형제경영'이 향후 가속화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앞서 이번달 3일 정기인사를 단행한 삼성 역시 오너 일가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건희(68) 삼성전자 회장의 세 자녀인 이재용(42) 삼성전자 신임 사장, 이부진(40)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신임 사장, 이서현(37)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은 올해 나란히 승진했다. 이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음은 당연지사다.
금산법에 의해 삼성은 늦어도 2012년 4월까지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그룹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때문에 내년부터 있을 삼성의 일련의 움직임들은 대부분 오너 경영을 확고히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LG 역시 오너 경영체제을 더욱 강화했다. 인화경영의 전통답게 올해 인사를 통해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유임시킨 가운데 위기에 빠진 LG전자의 사령탑에 구본무(65) LG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59) 부회장을 올린 것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LG가(家) 4세인 구광모(32) LG전자 과장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려 경영권을 물려받긴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까닭이다.
오는 28일께 정기인사를 단행할 예정인 현대차그룹의 관전포인트 역시 정의선(40) 현대차 부회장에게 맞춰져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인사에서는 지난해 여름 승진한 정의선 부회장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일부 임원진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대기업집단들의 움직임은 오너 경영을 통해 성장해 온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문화와 무관치 않다.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이 오너 경영 보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효율적이란 사실은 최근 몇 년간 삼성과 LG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3월 경영에 복귀한 이후에야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기 시작했으며, 남용(61) 부회장이 이끌던 LG전자의 경영실험도 결국 위기를 자초하며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급박한 환경에서 시스템을 위한 실험을 강행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던 셈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빨라져 확고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줄 리더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오너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며 "이미 하부조직까지 그 같은 문화에 익숙해졌고, 이를 단박에 바꾸기에는 그에 따른 비용이 너무 크다"고 진단했다.
다만 책임지지 않는 권한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올해 대기업집단 전체 계열사의 전체 이사는 4736명인데, 이 가운데 오너 일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9%에 불과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는 곱씹을 만하다. 특히 삼성의 경우 등재된 324명의 이사 중 오너 일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이사회 등재는) 회사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에 대해 책임소재를 물을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은 오너 일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불법적인 사익추구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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